제 3438 호
2021년 10월 03일
금주의 말씀
제목 : “십일조의 성경적 배경과 의미”
본문 : 창세기 14:15~24 (구약 16쪽)
들어가는 말 :
 
요즘 수요저녁예배 시간에는 말라기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3장의 말씀을 전했는데, 3장의 본문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십일조 문제를 다루는 것이 부족하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오늘 다시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유튜브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다루고 있는 뜨거운 주제 중에 하나가 십일조입니다. 긍정적인 측면의 설교도 있지만, 십일조는 구약시대에 국한된 율법의 요구이기 때문에 신약교회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설교자도 있습니다. 과연 십일조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것일까요? 율법시대가 종식되면서 십일조의 의무는 성도들과 관련이 없는 것일까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설교자들이 헌금설교는 안 하는 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분명한 원리에 의해 전하는 헌금설교는 어떤 설교보다 중요한 설교입니다. 사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십일조는 성도들의 삶에 여러 가지 유익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통해 성도들의 삶에 물질적이고 영적인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 론 :
 
성경에서 십일조에 관하여 최초로 언급한 본문은 창세기 14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뜻하지 않게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대승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옵니다(창14:17~18). 그런데 그가 돌아오던 길목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에서 아브람을 맞았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나와서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말한 내용과 이에 대한 아브람의 반응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맞이하면서 그에게 주고자 했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그의 용기나 318명의 군사력 때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승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멜기세덱은 이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알려주길 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람은 그가 얻은 모든 전리품 가운데서 십 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습니다. 아브람이 십분의 일을 드린 것은 율법의 요구나 이스라엘 민족의 규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때는 율법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아브람은 자신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물질의 십 분의 일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인 가장 중요한 원리는 율법이 아닙니다.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성에 있습니다.
 
말라기 3장 8~10절에서 십일조를 언급한 주된 이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나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 없이 원망만 일삼았습니다. 하나님의 주되심을 부인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말라기는 십일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도 예수님을 주로 믿고 시인하고 고백할 때 시작되듯이, 구원받은 이후 성화의 삶도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가 되심을 인정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사건 이후에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나아가서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드릴 때 그가 언급했던 십일조 또한 실제로 야곱이 하나님께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신약의 12사도들이 규칙적으로 십일조를 드렸다는 언급도 없으며, 바울 서신에도 십일조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십일조의 문제 즉 주를 향한 감사의 문제를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율법시대가 지나고 새 언약인 십자가의 은혜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십일조는 사라진 것입니까? 사실 신약 성경은 십일조 이상의 것들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20)
 
성경은 멜기세덱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합니다. 아직 이스라엘 12지파도 형성되지도 않았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도 훨씬 이전인데, 성경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전쟁을 치루고 돌아와 피곤하고 굶주린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즙을 전해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떡과 포도즙을 나누셨습니다. 히브리서 7장은 살렘 왕 멜기세덱을 소개하는데, 7장 후반부에서는 멜기세덱을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로 소개합니다. 이처럼 떡과 포도즙으로 아브람을 맞이했던 멜기세덱은 만왕의 왕이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율법이나 이스라엘 민족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시대를 무론하고 민족과 문화를 뛰어 넘어 모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통해 주님께 감사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대상29:16, 레27:30). 그러므로 십일조는 그리스도와 나 또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 된 나와의 신분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또 다른 잘못된 가르침과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기적인 동기와 목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께서 엄청난 물질을 채워 주셔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이를 기대합니다. 물론 저는 말라기 3장 10절에서 약속하신 하늘의 문을 열고 받을 곳이 없도록 복을 쏟아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물질적 손실을 입도록 하신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치졸한 분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바르지 못합니다. 신약에 와서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십일조는 구약의 산물이고 구약시대에 끝이 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또는 예수님과 바울은 십일조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신약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 그룹에 속해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헌물을 드림 못지않게 중요한 공의와 긍휼은 행하지 않고 종교적 형식과 외식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들을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 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마23:23)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릴 때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
(고후8:2)
 
결 론 :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마음을 재는 척도이며 마땅한 의무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가 되시며 나의 모든 소유의 공급자이시고 나는 그분의 청지기임을 고백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나아가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신뢰하는 고백이며, 탐심을 극복하는 원리와 방법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신약성경의 평행구절은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3)

물질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순종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일터와 가정에 주님의 기뻐하심과 공급의 은혜가 있을 것을 바라며 동시에 그렇게 될 것을 믿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바랄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모든 필요들을 공급하시는 주의 은혜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늘 가득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제목
◎ 교회와 사역을 위하여
- 구령목표 1,000명, 성인 출석목표 500명 달성을 위하여
- 교회에 활발한 복음 전파와 구령이 일어나도록(전도대상자, 전도사역)
- 담임목사님 영육간의 강건함을 위하여
- 사역자, 직원 그리고 각부서의 사역을 위하여: 찬양대, 오케스트라, 주일학교(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 바나바 사역을 위하여
- 군 선교를 위하여
◎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 지도자들이 정직하고 공정하게 나라를 이끌어 가도록
◎ 코로나로 생업과 사업이 힘든 성도들을 위하여
◎ 성도들과 각 가정을 위하여
- 최근에 구원 받은 분들의 믿음 성장을 위하여
- 성도들의 생업과 사업의 번창을 위하여
◎ 건강 회복을 위하여
- 박진호, 윤애경, 김양님, 민종섭, 이성혜, 서만철, 권정순, 신자삼, 곽세인, 김민경, 김민재, 이점순, 하봉순, 한태운, 홍제범, 김인환, 이지원, 서장석, 이만형, 김지은, 송명자
◎ 암투병 중이신 분
– 김부국, 김인환, 어근영, 이금호, 임춘이, 홍진기, 황옥희, 김정남
◎ 군복무 중의 형제들 위하여
- 성원석, 이더하기, 이은창, 조국현, 홍기찬, 김민석
◎ 해외성도들을 위하여
- 정수희, 김도현 가정, 이솔, 김예은, 백두현 가정, 김세민, 김세영, 황세희, 황세연
◎ 구원을 위하여
- 김남진, 송해권, 송 철, 이금남, 고구호, 김현수, 최종석, 임상근, 구미옥, 임보경, 김문희, 지윤선, 이세림, 조필홍, 배옥순, 김형복, 김예은, 조순심, 설영덕, 김채연, 차 훈, 임향림, 김복진, 이홍식, 이현숙, 김정원, 권병훈, 손희남, 박세종, 전원례, 노형석, 박영숙, 유양선, 김일순, 송윤근, 문명온, 최상준, 임향옥, 임향선, 한형진, 이용진, 송정오, 양지석, 박혁균, 조영란, 박미솔, 양선규, 김용훈, 김강중, 김건중, 김용성, 김용승, 박희원, 김수정, 여례연, 박선옥, 황한나, 이가은, 최종균, 김한기
◎ 선교사님들과 선교 사역지를 위하여
- 본교회 개척교회 : 주사랑 성서침례교회(시흥) 김재한 목사
- 본교회 파송 : 김연규(미얀마), 박점득(일본)
- 친교회 파송 : 박정복(대만), 김파울(필리핀), 여병무(몽골), 김종옥(몽골), 임철순(가나), 한수현(네팔), 김성일(N국), 주윤식(N국), 지미박(일본), 한대기(미얀마), 이지성(인도네시아), 김성준(멕시코)
- 한국성서침례신학교와 신학생들(김정민, 이정호, 김기영, 이유진)을 위하여
교회소식
◉ 2021년 영혼구령 (현재까지 결신자 : 121명)

◉ 예배안내
오늘 주일예배는 오전 10시와 12시, 두 번에 나누어 드립니다. 주일학교(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예배는 대면예배로 드립니다. 초등부와 중고등부는 주일학교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예배실황을 중계하고 유치부 예배는 녹화 후 12시에 영상을 업로드 하겠습니다. 수요예배 시간은 저녁 7시입니다.
 
◉ 침례교도의 확신반
봄 학기에 이어 9월 11일(토)부터 ‘침례교도의 확신반’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가을 학기 성경공부는 격주로 토요일 오후 4시, ‘유튜브’와 ‘구글미트’를 통해 진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곽인재 전도사에게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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